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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배들도 버려두고 (눅 5:8-11)

베드로, 배들도 버려두고 (눅 5:8-11) 오늘 본문은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이라는 찬양의 배경이 되는 말씀이다. (눅 5:4-6, 쉬운성경)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대로 하니, 고기를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게 되었습니다. 익히 알다시피 베드로는 어부였다. 당시 어부는 서민 혹은 하층민에 속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였다. 그래서 어부들에게 당일 어획량은 상당히 중요하고 또 민감한 문제였다. 그런데 이날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허탕만 치고 말았다. (눅 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

복 주시는 하나님 (창 1:26-31)

복 주시는 하나님 (창 1:26-31) “첫인상”은 너무나 중요하다. 처음 만난 사람이, 다짜고짜 화를 내고 욕을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마 다시는 그 사람과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처음 만난 사람인데 반갑게 인사하고,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한다면 어떨까?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싶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첫인상은 어땠을까? 무서웠을까? 어색했을까? 아마 “감사”했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보기에 하나님은 너무나 고마우신 분, 감사한 분,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분이었다. 그 이유를 알려주겠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을 만드셨다. 에덴동산은 너무나 살기 좋은 곳이었다. 맑고 깨끗한 강이 흐르고, 맛있는 과일 나무들이 주렁주렁 열리고,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너랑 나, 하나님의 형상 (창 1:27)

너랑 나, 하나님의 형상 (창 1:27)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첫인상은 창조주이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인간을 포함해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몇 가지 원리를 정하셨다. 첫째는 피조물에 당신의 속성과 성품을 반영시킨 것이고, 둘째는 피조물을 다양하게 만드신 것이고, 세 번째는 피조물들이 다양성 안에서 조화를 이루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1. 하나님은 피조물에 당신의 속성과 성품을 반영시키셨다. 모든 창조물에는 창작자의 특성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똑같은..

반드시 말씀대로 되리라 (왕하1:15-17)

반드시 말씀대로 되리라 (왕하1:15-17) 아합 왕이 죽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에 올랐다. 아하시야의 통치 기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기껏해야 2년 남짓이었다. 그런데 그나마도 즉위 초기부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바람에 통치다운 통치 한번 못해보고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열왕기하 1장에는 아하시야의 짧디 짧은 통치 기간 중에 일어났던 중대한 사건-좀 더 정확하게는 신앙적으로 중대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아하시야가 아버지 아합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기가 무섭게 모압이 북이스라엘 배반했다. 이것만 해도 심각한 문제인데 그 와중에 아하시야는 난간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는다. (왕하 1:1-2)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주를 알고 나를 아는 지혜 (눅 2:48-52)

주를 알고 나를 아는 지혜 (눅 2:48-52) 요셉과 마리아는 아들을 낳고 얼마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율법에 따라 정결 예식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요셉과 마리아가 행해야 할 정결 예식이 뭐냐면 간단하게 말해서 장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눅 2:22-24)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이때 요셉과 마리아는 예루살렘에서 ‘시므온’을 만나게 된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노인이었다. 시므온은 성령님으로부터 특이한 지시를 받았는데, ‘주의 ..

하나님의 첫인상 (창 1:1-2)

하나님의 첫인상-창조주 (창 1:1-2)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관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는 ‘첫인상’이다. 첫인상은 관계의 첫 단추와도 같다. 어떤 의미에서든 첫인상이 좋으면 관계도 순조롭게 시작된다. 하지만 첫인상이 나쁘면 관계도 순탄치 않다. 이처럼 첫인상은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런데 ‘첫인상’이라고 하는게 그렇게 명료한 개념이 아니다. 사전적인 정의 자체도 애매모호하다. 사전을 찾아보면 첫인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첫인상 : 첫눈에 느껴지는 인상] 이게 무슨 뜻인지 하나씩 풀어 보자. - 첫눈 : 처음 딱 봤을 때 - 느낌 : 마음의 기운이나 감정 - 인상 : 마음속에 새겨지는 느낌 종합하면 첫인상이란 “처음 딱 봤을 때 느껴지는 느낌적인 느낌..

하나님을 닮았어요 (창 1:26-31)

하나님을 닮았어요 (창 1:26-31) 여러분 혹시 ‘부전자전’이라는 말 아는가? 아버지와 아들이 쏙 빼닮았을 때 “부전자전”이라고 말한다. 자녀는 부모를 닮는다. 여러분도 엄마 아빠를 닮았다. 이렇게 얼굴이나 생김새가 비슷할 때 우리는 “닮았다”고 한다. 하지만 “닮았다”는 말은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이나 말투, 행동이 비슷할 때도 사용 한다. 사람은 누구를 닮았을까? 사람을 만드신 분을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온다. 사람은 하나님을 닮았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 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7)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 하셨다는 말은 바로, 하나님을 닮게 창조하셨다는 말이다. ..

하나님이 없어서 그리로 가느냐 (왕하1:1-4)

하나님이 없어서 그리로 가느냐 (왕하1:1-4) 모든 사람에게는 양면성이 있다. 장점이 있는가 하면 단점도 있고, 선과 악, 공과 과가 공존한다. 그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좋거나 완전히 나쁘지 않다. 국가 지도자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적인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서도 저마다 공과 과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공이 더 큰 지도자가 있는 반면에 과가 더 큰 지도자가 있는게 사실이다. 국가 지도자 중에서 공이 현격하게 더 큰 사람을 흔히 성군이라고 한다. 반대로 과가 현저한 사람을 폭군이라고 한다. 물론 폭군의 사전적인 정의는 “사납고 악한 임금”이다. 쉽게 말해서 공포 정치를 펼치는 폭력적인 왕이다. 하지만 비록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임금의 핵심 역할이 나라를 잘 다스리고 백성..

주의 인자하신 그 사랑이 (시 44:1-8)

주의 인자하신 그 사랑이 (시 44:1-8) 명절에 모처럼 만에 일가친척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다 보면 빠지지 않고 꼭 등장하는 주제가 있다. 바로 “왕년 타령”이다. 가만히 들어보면 왕년에 한 가닥씩 하지 않았던 사람이 없다. 다들 왕년에는 잘생겼었고, 공부도 잘했었고, 돈도 많았었고, 하는 일 마다 성공했었고, 그래서 쫓아다니는 여자 혹은 남자가 줄을 이었었다. 이게 100% 사실이든, 약간의 과장과 허세가 들어가 있든 그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역사책을 쓰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우리 끼리 추억팔이로 하는 얘깃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년 타령은 씁쓸한 끝 맛을 남긴다. 왕년에 잘나간 정도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뒷맛은 더욱 까끌하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건 다 왕년에 있었던 일이지, ..

나 다운게 뭔데?! (빌립보서 1:27-30)

나 다운게 뭔데?! (빌립보서 1:27-30) 여러분들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한창 자라나고 있는 성장기에 있다. 여러분처럼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만든 드라마를 흔히 「성장드라마」라고 한다. 포털 사이트에서 성장드라마를 검색해보니까, 반올림, 후아유, 학교 시리즈, 드림하이, 공부의 신, 응답하라 시리즈 정도가 메인으로 뜨더라. 성장드라마를 보면 방송사도 다르고 방영 시기도 다른데, 빠지지 않고 꼭 등장하는 대사가 있다. 아마 여러분도 한번쯤은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다운게 뭔데?!” 이 대사는 성장드라마의 대표적인 클리셰다. 대충 뭐 이런 장면이다. 평소에 성격도 좋고 장난도 잘치고, 그래서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 아닌 무시를 당하는 친구가 있다. 그러던 어느 ..

하나님은 왜 세상을 만드셨을까요? (창 1:24-25)

하나님은 왜 세상을 만드셨을까요? (창 1:24-25) 추운 겨울이 되면 사람들은 두꺼운 점퍼를 입어요. 몸을 따뜻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예요.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 신발을 신고, 눈이 나쁜 사람은 안경을 써요. 비가 오면 우산을 써요. 비를 맞지 않기 위해서예요. 먼 곳에 갈 때는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요. 편리하게 빨리 가기 위해서에요. 이렇게 세상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빛도 만드시고, 어둠도 만드시고, 해와 달과 별들과 땅과 하늘과 산과 들과 바다와 식물과 동물과 사람을 만드셨을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이유를 알려면, 우선 이 세상이 누구의 것인지 부터 알아야 되요. 이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랑, 무엇을 어떻게 (빌 1:9-11)

사랑, 무엇을 어떻게 (빌 1:9-11) “금사빠”라는 말이 있다. ‘금방 사랑에 빠진다’의 줄임말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날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이 같이 길을 걷고 있는데 얘가 갑자기 “야, 옷 좀 따뜻하게 입고 다녀... 감기 들면 어쩌려고..” 하면서 자기 외투를 벗어서 내 어깨에 살포시 얹어 준다. ‘어? 뭐지... 짜식이 은근히 자상한 구석이 있네’ 사랑에 빠진다. 한 밤중에 아는 오빠가 뜬금없이 문자를 보냈다. “잘 자, 좋은 꿈꿔~”, ‘뭐지... 갑자기? 혹시 날...’ 사랑에 빠진다. 이렇게 쉽게 쉽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을 보고 ‘금사빠’라고 부른다. 그런데 금방 사랑에 빠진다는 말은 뒤집어 생각해보면 사랑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맞는 말이다. 금사빠들은 짝사랑이든, ..

다 하나님이 만드셨어요 (창1:1)

다 하나님이 만드셨어요 (창1:1) (종이 비행기 접기) 여러분 전도사님이 이 종이로 뭘 만드는지 한번 맞춰 보세요. 맞아요. 비행기에요. 잘 나는지 한번 날려 볼께요(종이 비행기를 날린다). 누가 비행기 좀 갖다 줄래요? 고마워요. 여러분. 이 종이 비행기가 누구꺼죠? 왜 전도사님거죠? 맞아요. 전도사님이 만들었기 때문에, 전도사님 거에요. 이렇게 우리는 만든사람이 주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이 세상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이겠죠? 이 세상은 누가 만드셨을까요?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셨다고 가르치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믿는 친구들은 ‘아멘’ 해볼까요? 그런데 여러분 “창조”가 무슨..

시작부터 끝까지, 영원히 (빌 1:6)

시작부터 끝까지, 영원히 (빌 1:6) 여러분들 혹시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 있는가? 나는 병아리를 자주 키웠다. 요즘에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3-4개월에 한 번씩 어떤 아저씨가 교문 앞에서 병아리를 팔곤 했다. 우리는 그 아저씨를 ‘병아리 아저씨’라고 불렀다. 병아리 아저씨가 오는 날이면 교문 앞은 그야말로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여기저기서 ‘귀엽다’는 감탄이 쏟아져 나오고 살까 말까 고민하면서 중얼거리는 소리, “아저씨 병아리 암컷 한 마리, 수컷 한 마리 주세요” 주문하는 소리, 그리고 여기에 끊임없이 삐약거리는 병아리들 소리까지 더해져서 교문 앞이 엄청나게 북적거렸다. 나는 병아리 아저씨가 올 때마다 항상 암컷 두 마리, 수컷 한 마리를 샀다. 이 병아리들을 잘 키워서 매일..

신앙 회복, 기쁨 충만 (대하 30:13-22)

신앙 회복, 기쁨 충만 (대하 30:13-22) “히스기야”는 남유다에 개혁을 일으킨 것으로 유명한 왕이다. 여기서 말하는 ‘개혁’은 정치적, 경제적 쇄신이 아니라 신앙적인 쇄신을 의미한다. 히스기야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다윗처럼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였다. (대하 29:2)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런데 히스기야의 신앙은 자기 하나 건사하는데 머무르지 않았다. 히스기야는 남유다의 왕으로서 나라와 백성들을 신앙으로 바로 세우길 원했다. 그래서 개혁을 일으킨 것이다. 히스기야의 신앙 개혁은 역대하 29-31장에 걸쳐 기록되어 있는데 크게 3가지이다. 성전 정화, 유월절 회복, 우상척결. 이 중에서 오늘 함께 읽은 30장은 유월절 회복에 대..

하나님의 강한 위로 (수 1:6-9)

하나님의 강한 위로 (수 1:6-9) 흔히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 내가 의학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스트레스와 질병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의학적인 근거를 들어서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병원에서 진료 받을 때 의사들이 빼놓지 않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푹 쉬라”고 충고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스트레스에 뭐가 있긴 있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사방 천지가 스트레스 쌓이는 일 들 뿐이다. 우리는 주러 언제 스트레스를 받는가? 어떤 심리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삶속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길 때, 그 변화에 맞춰 적응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발생한다고 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변화에는 부정적인 변화뿐만 아니..

웃으며 안부를 물어요 (눅 24:51-53)

웃으며 안부를 물어요 (눅 24:51-53) 누가복음 시리즈59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믿지 않았다. 일반 대중들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눅 24: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눅 24:12, 우리말) 베드로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신 이후로 실의에 빠져있었다. 엄청난 실망감과 슬픔에 잠긴 채 무기력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냐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바로 옆에 찾아 오셨는데도 전혀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눅 24:15-16)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불타오르네 (눅 24:32)

불타오르네 (눅 24:32) 누가복음 시리즈 57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뭔가에 불타오를 때가 있다. 승부욕이나 경쟁심에 불타오르기도 하고, 질투심이나 복수심, 혹은 사랑에 불타오르기도 한다. 이렇게 뭔가에 불타오를 때 나타나는 현상 중에 하나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도 한때 승부욕에 불타올라서 물불 안 가리고 달려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땐 정말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달렸다. 중학생 때 있었던 일이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랑 같이 버스를 타러 가고 있는데 마침 버스가 오고 있었다. 조금만 뛰면 탈 수 있을 것 같아서 “야, 버스 온다. 뛰자!” 하고 냅다 뛰었다. 정류장을 향해서 한참 달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까 친구 놈이 설렁설렁 걷고 있는 거였다. 결국 버스를 놓쳤다. 순간 짜증이 확..

믿어요 그 약속 (눅 24:8-9)

믿어요 그 약속 (눅 24:8-9) 누가복음 시리즈56 기독교는 예수님을 ‘믿는’종교이다. 모름지기 ‘믿음’에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아무 내용도 없는데 무턱대고 덜컥 믿는 것을 ‘맹신’이라고 한다. 기독교는 맹신이 아니다. 신앙이다. 그래서 일정한 내용이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예수님의 ‘무엇’을 믿는가?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면 ①성육신과 ②십자가 대속, 그리고 ③부활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이것을 성육신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이유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죄 값을 치르신 것이다. 이것을 대속이라고 한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은 장..

그 모습을 보고 (눅 23:46-47)

그 모습을 보고 (눅 23:46-47) “없는 죄도 만들어 낸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를 궁지에 빠트리기 위해서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할 때(이런 경우를 두고 모함이라고 한다) 쓰는 말이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 누가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한 학생을 지목하면서 “너 왜 이렇게 떠들어?”라고 혼냈다. 그런데 사실 그 학생은 떠든 사람이 아니었다. 떠들지도 않았는데 지목을 당하니까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그래서 “선생님, 저 아무것도 안했는데요?”하면서 조심스럽게 해명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갑자기 더 화를 내면서 “뭐? 아무것도 안 해? 너 왜 수업시간에 아무것도 안 해? 학생이 수업시간에 아무것도 안 하는게 잘하는 거야? 너 이리 나와 봐” 하면서 그 학생을 막 혼냈다. 세상에 이런 억..